“우리도 AI 도입했는데, 왜 성과가 안 나오죠?”
실제로 저희가 기업과의 미팅 자리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전 세계 기업의 절반 정도만 AI를 도입했는데, 지금은 75%에 달합니다. 아서 디 리틀(ADL)이 발표한 ‘CEO 인사이트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CEO의 96%가 인공지능(AI)을 그 어떤 형태로든 이미 활용하고 있으며, AI를 성장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는데요.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릅니다.
기업의 42%가 AI 프로젝트를 POC 단계에서 멈췄다고 합니다. 실제 서비스로 가기도 전에 포기한 것이죠. 1년 전에는 17%에 불과했는데,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입니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입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기업이 실제 성과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2025년이 ROI를 검증하는 해였다면, 2026년은 검증된 성과가 본격적으로 퍼져나가는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요. 산업별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제 성공 사례를 통해 들여다보겠습니다.
금융・증권
금융업은 AI 도입에서 가장 앞서 있는 산업입니다.
한국신용정보원에 따르면 전 세계 금융기관의 46%가 이미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고객 서비스와 리스크 관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장 전망도 가파릅니다. 2026년까지 은행권의 생성형 AI 관련 지출은 3조 2,000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금융에는 다른 산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장벽이 있습니다. 바로 규제와 보안입니다.
외부 클라우드나 퍼블릭 모델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권의 AI 도입은 단순한 ‘적용’이 아니라 정교한 ‘설계’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쉽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신한투자증권은 해답을 찾아냈습니다.
내부 규정과 매뉴얼, 방대한 리포트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찾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기존 키워드 검색은 당연히 한계가 있었고, 망분리 환경에서는 외부 AI를 쓸 수도 없었습니다. 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요약 중심의 RAG 모델을 온프레미스 환경에 직접 배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변화는 곧바로 나타났는데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에서도 원하는 답을 몇 초 만에 확인할 수 있었고, 동시에 보안과 규제 요건도 충족했습니다. AI가 보안에 위협이 된다는 고정관념을 뒤집고, 오히려 보안과 효율을 동시에 잡을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였습니다.
K증권은 다른 접근을 택했습니다.
고객 상담에 생성형 챗봇을 도입하려 했지만, 금융권의 특수성 때문에 정확성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주식 거래 수수료처럼 정답이 정해진 질문에 AI가 임의로 답을 내놓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K증권은 여기서 하이브리드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미리 정의된 질문은 즉시 정확한 답을 주고, 복잡한 질의는 RAG 기반으로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동시에 폐쇄망 환경에서 오픈소스 패키지의 보안 취약점을 반복적으로 점검하고, pod와 node 수준의 장애 복구도 검증했습니다. 생성형 AI를 금융권에서도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셈입니다.
KB국민카드의 사례는 AI가 직접적인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진 경우입니다.
카드 혜택과 이벤트 정보는 수시로 바뀌는데, 고객이 이를 제때 확인하지 못해 참여율이 저조했습니다. 국민카드는 생성형 Q&A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고객이 “이번 달 내 카드 혜택이 뭐야?”라고 묻는 순간, 최신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결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는데요. 고객 참여율과 만족도가 동시에 높아졌고, 대화 로그를 통해 새로운 마케팅 인사이트까지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유통・리테일
리테일과 플랫폼 산업에서 고객 접점은 곧 경쟁력입니다. 하지만 이 접점은 언제든 부담으로 바뀔 수도 있는데요.
가령 성수기에는 평소 하루 700건이던 문의가 1,000건을 넘어섭니다. 상담사 20명이 풀가동해도 대기 시간은 30분 이상. 새벽 두세 시에도 “우리 동네 배달되나요?” 같은 질문은 계속 이어집니다. 임시직을 뽑으면 교육에만 2주가 걸리고 비용은 두 배로 늘어나지만, 인력을 늘리지 않으면 고객 이탈이 발생하죠.
요기요가 찾은 답은 단순했습니다. “반복되는 질문은 AI가 받는다.”
생성형 챗봇과 음성 응대를 도입한 뒤, 월 1만 7천 건의 문의를 AI가 처리했습니다. “배달 가능 지역인가요?”, “주문 취소하고 싶어요”, “결제 수단을 바꾸고 싶습니다.” 같은 문의는 사실 답이 정해져 있기에 AI가 24시간 응대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상담사들은 환불 분쟁이나 특수 배송 요청처럼 복잡하고 민감한 케이스에만 집중하게 되었는데요. 고객 접점의 무게를 인력에서 AI로 옮긴 덕분에, 요기요는 더 많은 고객을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커머스와 플랫폼 산업에서 성공하는 기업들은 공통된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트래픽이 폭증해도 인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시나리오 자동화와 음성·텍스트 통합, 운영 지표 기반 최적화를 통해 대응력을 높였습니다. 고객 접점의 무게를 AI로 옮긴 덕분에, 성수기에도 안정적인 서비스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고객 접점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건설・무역
건설과 무역의 백오피스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기업 운영을 지탱하는 중요한 영역입니다.
이 분야에서 AI 도입은 늘 더뎠습니다. 서류가 너무 많고, 형식도 너무 복잡했기 때문인데요. 결국 사람이 직접 읽고 필요한 항목을 골라내야 했습니다. 속도는 느리고, 오류도 피할 수 없었죠.
하지만 이제는 AI가 문서를 직접 읽고 이해하면서, 예전처럼 사람이 일일이 들여다볼 필요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A 건설사는 협력사로부터 들어오는 180종의 문서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한 문서에서 추출해야 하는 데이터 항목만 평균 80개에 달했는데요. 기존 OCR은 표와 이미지가 혼재된 문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결국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고 엑셀에 옮겨 적어야 했습니다. 복잡한 문서는 데이터 추출에만 1~2개월이 걸렸습니다.
해법은 멀티모달 접근이었습니다. PDF를 이미지로 변환한 뒤 텍스트 분석과 이미지 분석을 병행했습니다. 대형 언어 모델에는 단계별 질문을 던졌습니다. 먼저 “금액이 포함된 영역 찾기”, 이어서 “해당 영역에서 정확한 수치 추출”과 같은 방식입니다. 여기에 동의어 처리와 단위 인식 기능을 추가하면서 정확도를 끌어올렸습니다.
성과는 뚜렷했습니다. 초기 정확도 57.62%에서 출발해 최종적으로 90.92%까지 개선되었습니다. 1~2개월 걸리던 작업이 며칠 만에 끝났고, 무엇보다 감사 추적이 가능해졌다는 점이 의미 있습니다. 모든 추출 데이터의 출처가 시스템에 기록되면서, 투명성과 신뢰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무역 분야도 유사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국내 한 금융기관은 과거 무역 서류에서 CO, IP 같은 필수 항목을 직원이 직접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AI-OCR과 NER(named entity recognition)을 도입하면서 처리 속도는 몇 배 빨라졌고, 오류율은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추출된 데이터는 JSON 형태로 표준화되어 다른 시스템과 연계도 수월해졌습니다.
이렇듯 무역과 건설, 백오피스에서 성과를 내는 기업들 또한 더 이상 사람의 손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AI를 활용한 표준화, 멀티모달 분석, 품질 모니터링, 거버넌스 친화적 추적성을 통해 병목을 해소하고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 혁신이 결국 기업 전체의 경쟁력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병원・헬스케어
의료 현장은 AI 도입에 보수적이었지만 최근 변화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대한의료정보학회는 2024년 가을 학술대회에서 "임상 및 운영 현장에서 AI 활용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했는데요. 특히 상담 기록, 문서화, 분류, 중증도 선별에서 효과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의료 현장에 AI를 활용한 사례는 분당서울대병원이 대표적입니다.
과거 상담사는 환자와 통화를 마친 뒤 일일이 기록을 남겨야 했습니다. 오류가 생기거나 전달 과정에서 정보가 누락되는 일이 잦았죠. 병원은 STT 기술을 도입해 상담 내용을 실시간으로 텍스트화했고, 화자 분리 기능까지 적용했습니다. 상담사는 기록 부담에서 벗어나 환자 케어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의료진은 필요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확보했습니다. 대기 시간은 줄었고 환자 만족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헬스케어에서 성과를 내는 기관들은 공통된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AI가 의료 현장에 스며들면서 바뀐 풍경은 거창한 것보다 이런 작은 차이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환자가 상담사에게서 받는 응대, 의료진이 정보를 확인하는 속도, 기록이 남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 그 차이는 현장에서 이미 확인되고 있습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살펴본 산업별 사례들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여도 결국 같은 패턴으로 모입니다.
성과를 내는 기업들은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제약을 설계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작은 성공을 확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무엇보다 현업의 문제를 중심에 두었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모델을 쓰느냐가 아닙니다.
우리 조직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가, 바로 그 질문이 성과를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